• 최종편집 2022-12-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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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생으로 우리 나이로 94세이지만 호적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다.

 

경찰공무원 출신으로 일찍 퇴직하시고 40대 초반부터 군산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원래 고향은 부안군이다. 허씨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 김해 김씨 후손들로 부안에 허씨들이 다소 거주하고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신 분으로는 경제계에서는 일진그룹의 허진규 회장인데, 허 회장의 아버지와 필자의 할아버지가 막역한 사이였으며, 보릿고개 시절에는 리어카를 끌고 와 할아버지에게 양식을 꾸어가기도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아버지는 사업을 시작하시면서 40대 초반에 골프를 배우셨는데, 그 뒤부터 사업보다 골프에 더 심혈을 기울여 많은 시간을 보내신 분이다.

 

아마 그때 요즘 말하는 재테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으셨다면, 서해안시대 서해안 투기 바람일 불 때 부동산 투기라도 하였다면 지금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을 것이지만 다른 친구분들에게 비해서는 재테크보다 오로지 골프에만 관심이 크셨던 분이라 자식들로서는 다소 아쉽기는 하다

 

당시에 군산지역에서는 규모가 비교적 큰 숙박시설을 운영하였으나 다 정리하고 지인과 함께 소룡동 바닷가에 골프연습장을 차려 당신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신 분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왕성한 활동을 하던 50~70년대에는 정말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시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살아가는 시대가 아닌데도 어떻게 보면 대단하신 분이다.

 

필자는 86년도에 운전면허를 땄는데, 운전 연습을 하기 위해 어렵게 승낙을 얻어 아버지 차를 몰고 군산 시내를 나가면 승용차는 도로에 몇 대밖에 없던 시절로, 골프를 치는 분들도 사업규모가 큰   사업주들이나 판·검사, 변호사 아니면 골프채를 잡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조금 앞서가신 분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골프 대중화시대가 오신다면서 30을 막 넘은 나에게도 골프를 배우도록 하셨던 분이신데, 정말로 요즘 그런 세상이 되었으며 이제 골프를 모르면 대화에서 소외될 정도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골프를 무척이나 좋아하신 분이니 당연히 아마추어로서는 언더파를 치시기도 하고, 7번 아이언 하나로 익산 상태힐CC(당시 팔봉컨트리클럽)에서 싱글을 치시는 분이니 어느 정도 골프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골프채 14개 까지 가지고 치라고 정해준  영국왕실골프협회나 미골프협회 등에서 보면 같잖고 웃기는 일이며, 골프장비 메이커들의 영업을 방해하는 일이겠지만.

 

군산에서는 물론이고 호남권에서는 아마추어로서는 상위 클래스에 들어갈 정도로 나름 인정을 받기도 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아버지 친구들, 대충 전북일보 군산분실장,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내신 박노길씨, 성진(SJ)유업 창업자인 김용만씨, 목재업을 하시던 이응익씨, 채석장과 레미콘 공장을 하시던 김철완씨 등 대부분 작고하시고, 이제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도 대부분 60대 이상의 지긋한 나이이다.

 

당시에는 전북에서는 정규 골프코스라고 해야 익산 팔봉컨트리클럽 한 군데밖에 없었고, 군산미공군기지 내에 9홀 규모의 대중골프장 뿐이었다.

 

나중에 1997년에 태인컨트리클럽이 생겼지만 골프인구가 점점 늘기 시작하면서 한마디로 부킹난이 장난이 아니었다.

 

접대골프가 성행하던 당시로는 부킹을 못하면 사업도 지장이 많은 때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팔봉컨트리클럽 회원이자 이사(운영위원)로 활동을 하신 것으로  기억되며,  군산미공군기지(8전투비행단)와 지역 인사들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한미친선골프협회의 창립 멤버로 오랫동안 활동하시기도 했다.

 

나중에 팔봉컨트리클럽 회원권은 사고를 많이 친 아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팔았다고 말씀하셨으며, 결국에는 한미친선골프협회 멤버쉽도 넘기면서 공식적인 활동은 접으신 걸로 기억이 된다.

 

그러면서도 골프에 미련을 버리시지 못하시고 대한민국에서는 최고령인 76세의 나이에 골프지도자 테스트에 응시, 실기시험까지 거쳐 골프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여 군산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N골프연습장에 젊은 프로들과 나란히 사진을 걸어놓고 레슨을 하신 분이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누가 노인네한테 레슨을 받겠냐고 의아하겠지만 골프라는 것은 아마추어의 경우 입문하는 나이도 다양하고 체격과 체력, 체질이 제각각이라 누구나 다 젊은 프로들처럼 좋은 자세와 좋은 스코어를 내면서 칠 수는 없다. 오로지 희망사항일 뿐이다.

비록 고령이라고 해도 젊은이와 경쟁하여 좋은 스코어를 내는 운동이 골프이다.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골프채를 놓을 때까지 프로의 스윙과 시합을 보면서 자신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것이 '골프'라는 운동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에게 더욱 재미가 있는 스포츠인지는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한 금액의 돈을 지불하고도, 스트레스를 받는 운동이기도 하다.

도박처럼 엄청난 상금을 걸어 놓고 세계 곳곳에서 경기를 수시로 개최하고 TV 생중계를 하는 정도이니,  어쨌든 골프는 인간에게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매력있는 운동임에 틀림 없다.

 

요즘 젊은 프로들은 멋진 스윙을 하지만 얼굴 다르듯 모두가 다른 체격과 나이 등 다양한 조건에 맞춰 지도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이 들어 골프를 배우시는 분이나 여성들에게 '맞춤형 레슨'을 하시기 때문에 80이 다 되실 때까지 연습장에서 골프지도자로서 한 켠을 지키고 계셨던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나이 들어 초라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고, 실제로 골프클럽을 들고 다니면서 목에 힘주고 무시하는 골퍼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골프에 대해서는 열정이 대단하셨던 분이니 그런 것은 괘념치 않았을 것 같고, 오히려 일찍 가신 분들은 산에 누워계셨을 나이에, 골프를 가르치면서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신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당신의 아버지 허규현씨는 78세인 1970, 어머니 이중이씨는 2012105세의 나이에 작고하였으며, 형제로는 인기, 양기(82.전 현대중공업 협력회사 대표.82), 옥기(.78), 영기(75.전 울트라건설 대표) 5남매인데, 바로 아래 동생 인기는 당시 상업은행을 정년 퇴직하시고 천안에서 숙박시설을 운영하셨는데, 간판을 수리하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셨다가 떨어지셔서 뇌진탕으로 2009년에 돌아가셨으며 나머지 분들은 모두 건강하게 잘 사시고 계신다.

 

아버지는 어머니 신숙양(92)와 함께 당신의 막내아들 현찬의 집인 세종시에 거주하고 계시는데, 어머니의 건강이 다소 안좋다고 하신다.

 

90대의 노부모를 모시는 막내 동생 현찬이가 고생이 너무 많구나. 형으로서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다. 아무튼 미안하고 고맙다. 너는 앞으로 복 많이 받을겨.

 

아버지는 자녀로 종운, 종진, 종엽, 종우, 정찬, 종필, 인선(), 현찬 등 8남매를 두었으며, 종진은 인터넷신문 새만금타임즈 대표, 정찬은 전북제일신문 취재부장, 종필은 김제스파힐스CC 총괄본부장으로 있으며 나머지는 자영업 및 회사원이다.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세요~

 

                                                                           2022년  2월 1일 설날에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아들  종진  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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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허만기(許萬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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